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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 개의 발자국

 by. 레트

겨울이었다.

나는 가만히 제 앞에 놓인 새하얀 풍경을 쳐다보았다. 눈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은 회상, 아니면 White Love와 같은 겨울 노래를 생각나게 했다.그 하얀 눈 덕분에,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발자국이 자리를 남겼다. 발자국이 남는 건 당연한 건데, 괜히 신경이 쓰여서 자리를 돌아다니기 싫었다.너만 보면 떨리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. 하지만 나는 또 발걸음을 옮겼다. 자꾸만 마음속 깊은 한편이, 지금 내 발걸음처럼 계속해서 너의 주위를 서성거렸으니까.

 

요즘 들어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이유. 그리고 내가 자꾸 눈길 위를 서성거리는 이유.

다 같은 너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.

 

이렇게 자꾸 너의 주위를 맴돌다가, 우연을 가장하고서라도 너에게 말을 한 번 더 걸고 싶다는 유치한 마음. 괜히 그런 작위적인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, 결국에는 또 머리보다는 심장이 앞서서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.

그러다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대하던 너를 만나면, 웃기게도 내 입술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.

네가 없을 때 내 입가에 천 번은 맴돌던 말도, 매일매일 가슴 속에서 꽉 차 있어서 터져 나오려는 말도.

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 아무나가 아닌, 너에게만 들려주고픈 그 말이.사실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 하는 말이.

네 앞에만 서면 차마 첫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.

 

네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다가, 너의 뒷모습이 보이면 그제야 너를 향해 손끝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 보곤 했다.

그 가슴 뛰는 한마디는 가끔 나를 미치게 했다.

네 앞에서 하고 싶었던, 그러나 하지 못했던 말을 그렇게 하고 나면. 내가 손끝으로 써 보았던 그 자리에 너는 없었다.

그토록 바라던 너는 보이지 않고, 내가 온통 서성거렸던 천 개의 발자국만이 남아있었다.

 

새하얀 눈 속에서 너를 찾아 헤맨 발자국은 이상할 만큼 새까맸다.

그러면 나는 또 그 발자국을 뒤에 감추려고 무작정 애를 썼다.

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지는 몰라도, 너에게는 이런 내 마음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.

 

나는 한 손을 뻗었다. 내리는 눈을 잡아보았다. 작은 눈꽃 송이는 큰 손안에서 너무나도 금방 녹아내렸다.

그 눈꽃 송이가, 너에게 전해지는 내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.

단 한 번만 너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. 하지만 그 한 번이라는 건, 죽을 만큼 힘을 다해야 겨우 할 수 있는 한 번이었다.

 

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, 가슴 아린 설원 속에서 나는 또 끝없이 헤매었다.

새하얀 공간 속에 새겨진 천 개의 발자국 위에 나는 또 너 몰래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.

사랑해.

그 발자국 뒤에 남는 건 눈꽃뿐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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