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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평범한 날 

  겨울이었다. 추워진 날씨에 늘 입고 다니던 반바지 안의 다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. 종국은 추위에 잠깐 떨면서도 겉옷을 하나 찾아 껴 입을 뿐이었다.

  운동하러 가는 익숙한 길. 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, 늘 다니던 집 앞 도로가 공사중이라 길을 돌아 가야 했다는 것이었다. 종국은 별 생각 없이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알려주는 길을 따라 운전해 가고 있었다. 서두를 것도 없겠다, 천천히 운전하던 종국의 눈 앞에 문득 익숙한 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. 

  흑백사진 같은 기억 속에서 예쁜 단풍을 자랑하던 큰 나무는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을 보이고 있었다. 가지 끝에 간신히 달려 있던 하나의 잎이 바람에 힘없이 떨어졌다. 중학교 너머 보이는 고등학교에서는 어려 보이는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. 남고였던 제 고등학교가 공학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흐릿했다. 하늘을 올려다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탁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. 이 모든 것들이 그만큼 시간이 많이 시간이 흘러갔다는 증거일 것이다.

  종국이 차문을 닫자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. 수업시간인지 주위에는 학생 한 명 보이지 않았다. 가볍게 차문을 잠근 종국이 주위를 둘러보았다.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운종장과 그 거리는 기억 속 그대로였지만 건물들은 어느 새 많이 변하여 서울 번화가를 보는 듯 했다. 쌀쌀한 바람이 불어 종국의 머리카락을 날렸다.

 

  지난 한 주를 돌이켜 보면 특별한 건 없어도 늘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.  가사를 쓰고, 곡을 만들고, 녹음하고, 촬영차 해외를 하룻동안 다녀오고, 예능 촬영하고, 회의하고, 운동하고. 20여 년 전 상상하던 지금의 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.

  종국에겐 잠시 여유를 가질 시간이 필요했다. 체력이 평균 이상은 되고도 남는 종국이지만 여기저기 신경쓸 것이 많을수록 피로는 누적되어 갔다. 이곳에 서려 있는 추억들은 그 피로를 잠시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. 문득 한 추억에 생각이 닿았다. 자신보다 먼저 버스에 타고, 자신보다 늦게 내려서 어디에 사는지 알지도 못했던 첫사랑.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을 같이 다녔지만, 결국엔 한 번도 앞에서 말해보지 못했던 그 이름. 그리고 15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부르게 된 그 이름의 주인공은, 처음 보는 남자와 같이 배가 부른 채 서 있었다. 

 

  생각이 조금 더 멀리 가려다 곧 그만두었다. 의미 없는 생각들이었다.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. 어쨌거나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살던 터전에 서 있었다. 추억 속의 큰 나무들과 굳건한 그 건물은 여전히 종국을 반겨 주었다. 다만 사람들은 모두 바뀌어 지금의 자신을 아는 이는 있어도 예전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플 뿐이었다. 

 

  멍하니 서 있다 머리에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털어내었다.

 

  봄이 오면, 앙상한 가지들에게서 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다시 돋아나기 시작할 것이다. 그 옆에는 꽃들도 새로 피기 시작할 것이다. 종국은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. 올해의 겨울과는 곧 헤어질 것이다. 봄이 오면, 종국 또한 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 것이다. 지난 날의 아픔들은 마치 없던 일 처럼 꽃이 되어 피어날 것이다. 종국은 다시 차 문을 잡았다. 기억 속의 나무를 한 번 더 스쳐지나갔다.

어제보다 오늘 더 - 김종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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